‘광기 해방’을 위한 새로운 전략, 연대
서구의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 이른바 ‘매드 무브먼트(Mad Movement)’는 수십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러나 그 긴 투쟁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연 승리했는가? 미국의 저명한 정신장애인 당사자 활동가이자 테라피스트인 윌 홀(Will Hall)은 최근 기고한 칼럼을 통해 뼈아픈 질문을 던졌다. 그는 우리가 과거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으며, 이제는 ‘연대’라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마인드포스트>는 윌 홀의 분석을 통해 대한민국 정신장애인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심층적으로 모색해보고자 한다.
운동에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윌 홀은 1982년 제10회 국제 인권 및 정신적 억압 반대 회의에서 채택된 성명서를 상기시켰다. 당시의 목표는 명확했다. 강제 치료를 폐지하고, 정신과적 진단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이중적인 법적 기준을 중단하며, 자발적인 대안을 만드는 것이었다. 윌 홀은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바이며, 만약 우리가 그것을 달성했다면 정신과적 폭력을 끝내고 광기를 해방시켰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40여 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어떠한가.
냉정하게 말해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다. 오히려 상황은 악화됐다. 론 와이폰드(Ron Wipond)가 그의 저서에서 지적했듯, 전 세계적으로 강제적인 정신과 치료와 약물 처방, 낙인으로 인한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윌 홀은 "정신과적 폭력은 당사자 운동을 반격하게 만들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정신과적 폭력은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을 강압하고, 괴롭히고, 폭행하고, 납치하고, 고문하고, 중독시키고, 불구로 만들고, 죽이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물론 일부는 변화를 이야기한다. 동료지원쉼터가 생겼고, 동료지원가(Peer Specialist)라는 직업군이 시스템 내에 자리 잡았다. 약물 부작용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다. 그러나 윌 홀은 이러한 변화를 진정한 승리로 보지 않는다. 그는 "나는 동료지원가들이 시스템을 위해 다양한 역량으로 일하고 있는 전체 산업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당사자 경험' 리더십 계급이 관료화되어 운동을 통해 경력을 쌓았다는 점에 동의한다"라고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근본적인 승리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감옥에서 갓 출소한 사람들, 고속도로 밑 텐트에서 사는 사람들, 대학 캠퍼스에서 강제 치료를 당하는 사람들의 현실은 여전히 참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당사자들은 승리하지 못했는가. 윌 홀은 당사자들이 실패한 전략에 매몰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첫째, 교육은 효과가 없었다. 당사자들이 아무리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전해도, 거대 제약회사의 목소리가 주류 방송을 장악하고 있다. 둘째, ‘회의에 참석하는 것(A seat at the table)’도 효과가 없었다. 위원회에 참여하고 정책 결정자들을 설득하려 노력했지만, 그들은 결국 당사자들을 무시하거나 흡수해버렸다. 윌 홀은 "나는 우리가 회의에 참석하는 접근 방식으로 앞으로는 전진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오히려 우리가 포섭당하고 제자리걸음을 한다고 생각했다"고 지적했다. 셋째, 돈을 구걸하는 것 또한 실패했다. 지원금은 언제나 삭감될 위기에 처해 있고, 이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검열하게 만든다.
윌 홀은 과거의 전략이 실패한 이유를 1970년대의 교훈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당시 정신장애인의 권리 증진은 여성 해방, 흑인 해방, 노동 운동 등 거대한 사회 변혁의 흐름 속에서 이뤄졌다. 그는 "정신과적 억압이 존재하는 데는 이유가 있으며, 그것은 권력자들에게 봉사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신과적 폭력은 빈곤, 노숙, 전쟁 등과 마찬가지로 잔인하고 소외된 시스템의 일부라는 것이다. 사회가 기본적인 인권을 방치할 때, 가장 먼저 버려지는 것이 바로 정신장애인의 인권이다.
윌 홀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 구조적 문제를 설명했다. 그는 "나는 자본주의 사회, 개인주의 사회에서 버림받았다"며 "내가 하수구로 빠져들었을 때 그 길은 정신과로 이어졌다"라고 고백했다. 그의 고통은 개인의 병리가 아니라, 전쟁 트라우마를 겪은 아버지와 빈곤했던 어머니, 그리고 이를 돌보지 않은 사회 시스템의 결과였다.
따라서 윌 홀이 제안하는 새로운 전략은 바로 ‘연대’다. 당사자만의 고립된 운동이 아니라, 빈곤 철폐, 주거권, 감옥 폐지, 보편적 의료, 기후 정의 등 다른 사회 운동과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캘리포니아 녹색당(Green Party)과 협력하여 강제 정신과 치료 폐지를 당론으로 채택하게 만든 사례를 들었다. 또한 장애인 정의를 지지하는 정치인 크리스 베넷(Chris Bennett)이 강제 치료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도록 이끌어냈다.
이는 단순히 세력을 불리는 것이 아니다. 윌 홀은 "승리는 초대가 아니라 운동을 필요로 한다"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다른 억압받는 집단들의 투쟁 속에 들어가 광기의 의제를 확장하고, 그들의 의제 속에 우리의 목소리를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내의 장애 정의 그룹과 만나고, 탈시설 운동가들에게 정신과적 감금의 문제를 알리는 것이 그 시작이다.
우리는 더 이상 고립된 ‘정신병자’들의 모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윌 홀은 "우리가 지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처음부터 지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매드 인 아메리카'(Mad in America)의 댓글 창에서 서로 싸우거나, 성과 없는 위원회에 이메일을 보내는 대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윌 홀은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가진 고유한 힘을 강조했다. 당사자들은 인간성을 말살하는 시스템에 맞서 싸워온 존재들이다. 당사자들은 취약함과 직관, 그리고 깊은 감수성을 알고 있다. 윌 홀은 "제국은 비인간화를 추진하지만, 우리는 비인간화 체계에 넘어가지 않는 싸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라고 결론지었다. 당사자의 광기와 고통의 경험은 단순히 치료해야 할 질병이 아니라, 이 차가운 자본주의 사회에 인간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열쇠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정신장애인 운동은 기로에 서 있다. 서비스의 확충이나 법률의 개정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승리를 위해서는 당사자를 억압하는 거대한 구조를 직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조에 맞서는 모든 이와 손을 맞잡아야 한다. '모든 이, 모든 이, 모든 이'다. 윌 홀의 제안처럼, 이제는 그러한 '모든 이'가 연대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