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굿뉴스] 박건도 기자 = 서울 강서구에 사는 박모 씨(28)는 좀처럼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같이 식사할래요?”와 같은 간단한 질문에도 한참을 뜸들이다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늘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다가도 뜬금없이 웃어 주위 사람을 당혹스럽게 하기도 한다. 박 씨의 어색한 웃음에 주변인들은 “무섭다” “다가가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를 향한 시선은 차갑기 그지없다.
우리 사회에는 경계에 선 사람들이 있다. 발달장애인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인지 능력 부족 등으로 사회적 부적응을 겪는, 이른 바 '경계선 지능인'들이다. 박 씨가 경계선 지능인이다. 서성이다가 말 한번 걸지 못하는 그는 가정, 학교, 직장에서 소외되기 일쑤다.
인구통계학적으로 경계선 지능인은 국내에만 6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일명 '느린 학습자'로 불리는 이들의 지능지수(IQ)는 71~84 사이다. 지능지수에 따라 경중은 천차만별이지만, 통상적으로 시공간 정보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능력이 보통 사람보다 떨어진다. 학력 인정이 필요 없는 운전면허시험도 버겁다. 운동화 끈 묶는 것도 어려워해 학창시절에는 친구나 교사로부터 무시 당하기도 한다. 폭언, 폭행은 일상이 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부당한 대우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ㅎ해서다.
경기도의 한 그룹홈에서 생활 중인 김모 양(20)은 모친의 죽음을 전해듣고 웃었다는 이유로 교사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그는 “어머니가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슬펐지만 평소 웃지 않으면 늘 때리던 선생님이 무서워서 억지로 웃었는데 또 맞았다"며 "왜 맞았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경계선 지능인은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지난 2014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신안 염전 노예사건 피해자도 경계선 지능인이었다. 장애도, 비장애도 끼지 못한 채 사각지대에 방치된 이들은 말 그대로 경계선에 있다.
경계선 지능인은 발달 장애인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겪지만 장애인으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지적장애 판정 기준인 IQ 70을 근소하게 빗겨갔다는 이유다.
실제로 올초 경계선 지능인 김지호 씨(가명)는 지자체에 장애인등록을 신청했으나 비장애로 간주돼 반려됐다. 의료는 물론이고 교육, 고용 등 각종 장애인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지원 방안으로 평생교육 등에 대한 조례를 두고 있긴 하지만 조례별로 경계선 지능인 정의가 상이할 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지원 규정이 없어 체계적인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경계선 지능인의 처우 문제가 대두되자 지난달 3일 더불어민주당 허 영 의원 외 57인은 ‘경계선 지능인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발의안은 경계선 지능인 지원에 관한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는 것과 정책 수립에 활용하기 위해 3년마다 실태조사를 실시할 것을 포함하고 있다.
허 의원은 ”경계선 지능인은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들에 대한 정의와 지원에 관한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학습부진아, 사회부적응자 등의 낙인에 시달리고 있다”며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체계적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장애인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의학적 기준으로 장애를 15가지 유형으로 나누는 장애인 등록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 장애인 복지 수혜가 어렵다.
김종인 사회복지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장애인 등록제도는 신체적 장애를 판정하는 경우에는 적합하지만 경계선 지능인과 같이 지적, 자폐성 장애는 이 기준으로 판정하기 어렵다”며 “미국과 같이 재활법을 둬 개인에 맞는 플랜을 세울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장애인 보다도 교육의 필요성이 높은 경계선 지능인은 15개 유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교육의 기회가 박탈되고 있다”며 “의학적 기준으로 단순하게 분류하기보다 각 개인에 맞는 플랜을 세울 수 있도록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